생각의 틀을 짜다 3

2025. 3. 5. 05:27심리학

"생물 개념" 살아 있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는 생물 개념은 어린 아기들에게도 관찰됩니다. 관찰 연구에 참여한 9개월 아기들은 사람, 토끼, 무생물의 순으로 흥미를 보였는데, 이는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했다는 뜻이에요. "전 조작기"의 "물활론적" 사고 때문에 달을 살아 있다고 여기거나 인형을 생물로 생각하는 등의 착오를 일으키긴 하지만,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개념은 유아기 동안 지속해서 확장됩니다. 아이들은 움직이고, 먹고, 소리 내고, 자라고, 아프고, 죽는 등의 생물적 특징들을 이해하게 되며,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생물이고 사람도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생물 개념의 예가 되는 그림책은 이 장의 후반에 있는 '정보 그림책'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처럼 유아기 동안 아이들은 실로 방대한 개념들을 만들어가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호기심'입니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만지고, 질문하며 개념의 폭을 넓혀갑니다. "호기심의 폭발" 호기심의 사전적 정의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알고자 하는 욕구에 더해서 그것을 탐색하는 행동까지 반짝이는 호기심을 이루지요. 영아기의 호기심이 신기한 모든 것을 입에 넣고 탐색하는 구강기 욕구에서 출발한다면, 유아기의 호기심은 인지적 욕구에서 출발하며 "왜?"라는 끝없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림책 "왜냐면••"의 주인공 아이는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유치원에 마중 나온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며 묻습니다. "엄마, 비는 왜 와요?" 엄마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왜'의 늪, '왜'의 덫입니다. 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귀찮아하면서 "글쎄다""아빠한테 물어봐" "저번에도 말해줬잖아"와 같은 대답으로 아이의 입을 막을 수도 있고, 또는 "여름이라 땅이 뜨거우니까 물방울들이 하늘로 올라가는데 거기는 공기가 아주 차가워. 그래서 물방울들은 구름이 되고···" 이렇게 조기 교육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책 속 엄마는 아주 다정하면서도 엉뚱한 대답을 내놓지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아이의 이어지는 '왜'에도 엄마는 매번 기상천외한 답을 하는데, 어른인 저조차 책장을 넘기며 어떤 답이 나올지 궁금할 정도이니, 아이는 얼마나 두근두근 재미있을까요? "안녕, 달"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재치 덕분에 어느새 아이의 귀갓길은 환상의 세계로 변합니다. 꼭 기억할 것은 아이의 '왜'라는 질문에 언제나 정답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의 눈높이에서 흥미로운 답,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답,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는 답을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가 호기심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 계속 탐구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때 단순했던 호기심은 본격적인 관심과 흥미로 발전해 나갑니다. 호기심이 있다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습의 출발점"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알게 된 개념들이 곧바로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지 능력도 있습니다. 바로 '주의'와 '기억'입니다. 중요한 자극에 온 정신력을 모아서 집중하는 '주의'와 주의를 기울여서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떠올리는 '기억', 이 두 가지 없이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식이 쌓이지 않습니다. "주의 집중력" 대개 '주의 집중력'이라고 하면, 필요한 만큼의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지속적 주의'와 여러 자극 중에서 꼭 필요한 것에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선택적 주의'를 포괄해서 말합니다. 두 돌 쯤의 아이가 한참 동안 앉아서 꼬물꼬물 혼자 놀고 짧은 그림책 한 권을 다 읽어줄 때까지 얌전히 들을 수 있는 것은 '지속적 주의'가 발달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른처럼 아주 긴 시간 동안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뇌의 성숙이 충분히 이루어진 청소년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합니다. '선택적 주의'는 예를 들어, 유치원에 간 아이가 주위의 많은 자극들에도 선생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일 때, 장난감이 가득 든 상자 속에서 특정한 장난감 하나를 찾아낼 때, 그림 속에 감춰진 사물을 찾아내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할 때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고 흩어지려고 하는 정신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므로 역시 필터 역할을 하는 뇌 기능이 발달해야 합니다. 선택적 주의 능력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급격히 발달하고 고학년이 되면 어른과 비슷한 수준에 이릅니다. "고미 타로표"의 그림책에는 언제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쾌함이 넘칩니다. 『금붕어가 달아나네』는 어항 속 금붕어가 달아나서 화분의 꽃으로 숨었다가, 사탕 단지에 들어가기도 하고, 텔레비전 안이나 장난감들 사이에 숨기도 해요. 독자는 장면마다 펼쳐지는 복잡한 배경 속에서 금붕어를 찾아내야 하는데, 바로 선택적 주의력과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한 활동입니다. "기억력"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어떤 자극에 우리가 지속적,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자극을 받아들인 신경 세포들이 활성화되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신경 세포들이 서로 연결 시냅스 됩니다. 자극은 이 복잡한 신경망을 통해서 뇌가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부호화되어 저장되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고 학습입니다. 우리의 뇌에 입력된 모든 정보는 일단 '단기 기억' 저장고에 일시 저장되었다가 그중 일부만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져 영구히 기억됩니다. 나머지는 기억에 실패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필요한 정보들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려고 치열한 노력을 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기억 책략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흔히 쓰는 방법인 중얼중얼 소리 내어 '시연'하는 것입니다. 뇌는 소리를 잘 기억하는데, 여러 번 반복할수록 장기 기억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 서로 관련 없는 정보들에 임의로 관계를 설정해서 기억하는 '정교화' 책략도 있습니다. '깃발'과 '닭'을 기억해야 할 때 '깃발을 든 닭'이라 는 상황과 이미지를 떠올리면 훨씬 더 쉬워지지요. 뇌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그림책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와 이미지 덕분입니다. "기억의 풍선"에서는 추억이 입혀진 기억을 색색깔의 풍선에 빗 대어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아이는 자신이 동생보다 더 많은 풍선을 가지고 있고, 엄마 아빠는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풍선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많은 풍선을 가지고 있는 건 할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풍선을 하나둘씩 놓치기 시작합니다.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치매에 걸린 거예요. 아이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지만, 마침내 할아버지의 풍선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자, 이제 할아버지에게 자기 풍선들에 담긴 추억을 들려주며 함께 한답니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도 일깨워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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