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하기

2025. 3. 3. 06:05심리학

언어 발달: 언어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도구입니다. 우리는 언어로 의사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습니다. 또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얻지요. 영유아기의 발달 역시 언어 습득의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언어는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어 발달은 아직 말하지 못하는 영아기 동 안 급격히 진행되어 유아기까지 아이들은 거의 완전히 모국어를 익힙니다. 이 '결정적 시기'에 아이들은 주로 귀로 듣는 소리'를 통해서 우리말이 품은 울림, 리듬, 아름다움을 체험합니다. 당연히 일상의 언어 자극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는 부지런히 그림책을 펼쳐야 하지요. 그림책은 아이가 최초로 접하는 '문학'입니다. 부모의 무릎 위에 앉은 아이가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그림책에 몰입하는 순간, 그림책 속 언어는 부모의 따스한 음성을 타고 아이 안에 스며들어 천천히 고이고 차오릅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으면 말귀가 트였다고 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말문이 트였다고 하지요. '트였다'라는 것은 막혀 있던 게 치워져서 '통한다'는 뜻입니다. 고이고 차오른 언어가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올 때 아이의 세계는 세상과 통하며 드넓게 확장됩니다. '전 언어기' 언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순서로 발달하는데, 그중에서 영유아기의 발달 과제인 '듣기'와 '말하기'까지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생후 1년은 구어를 말하기 이전인 '전 언어기'로 듣기 능력이 발달하는 때입니다. 여기서 '듣기'란 아기가 들려오는 소리를 단순히 청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여러 소리 사이에서 말소리를 구분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뜻해요. 그럼'을 알기 시작하는 건 언제쯤일까요? 대략 7~12개월이면 제 이름이 들릴 때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엄마 어디 있어? 아빠 어디 있어?" 같은 질문에 엄마 아빠가 있는 쪽을 눈으로 좇기 위해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아기가 듣고 이해하는 '수용 언어'가 나날이 늘어납니다. 발달에서는 항상 산출 능력보다 이해 능력이 더 먼저 성숙합니다. 아기가 귀가 쫑긋 세운 채 부모의 말을 듣고 있다가 몇 달 뒤, 심지어 몇 년 뒤 자기 말에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면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신경심리학자들은 '거울 뉴런'이라는 신경 세포의 기제로 이를 설명합니다. 아기가 말하지 못해도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고 보는 동안에 실제로 말할 때 작동하는 신경세포가 마치 거울 같은 기능을 하며 활성화되어 모방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전 언어기'에 아기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말소리를 내기 위의 한 준비도 열심히 합니다. 출생 후 3~4개월쯤이면 모음과 비슷한 소리를 길게 내며 소리 내기를 즐기다가 점차 자음이 첨가되고, 5~6개월이 지나면서 "마마마, 바바바~"와 같이 한 음절로 된 소리를 반복하는 '옹알이'를 해요. 혼자 누워서도 옹알이하고, 어떤 때는 신나서 괴성을 지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아직 말은 아니지만 옹알이를 통해서 성대, 입술, 혀 등의 발성 기관을 워밍업 하는 것이지요. 아기는 소통의 기쁨도 알게 되는데, 옹알이를 들은 부모가 응답을 해주고 아기가 다시 옹알이하는 것과 같은 '차례로 말하기' 상호작용을 통해서 의사소통의 기초를 배웁니다. '전 언어기'가 끝날 무렵이면 아기는 '몸짓 언어'로 소통하는 방법도 알게 됩니다.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동작과 의미를 기억해 두었다가 "빠이빠이"라는 말 대신 손을 흔들고, "주세요" 대신 두 손을 모아 내밀고, '네" 대신 고개를 끄덕이지요. 또 "저거, 이거" 대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는 표지에 의인화된 귀여운 냉장고가 그려진 보드 북. 냉장고 외에도 『벽장』 『서랍』 『목욕탕』 『화장실』 이렇게 다섯 권이 시리즈로 있는데, 집 안에 있는 이 사물과 공간들이 공통적으로는 바로 아기가 열어보길 좋아하고, 그 안에 여러 물건이 있다는 거예요. 냉장고를 열고, "우유야" 하고 부르면 의인화된 우유가 "네!" 하고 대답한 뒤 다음 장을 넘기면 컵에 꼴꼴 꼴꼴 우유를 붓습니다. 이렇게 냉장고 안의 여러 먹거리가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모두 아기에게 친숙한 것들이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대답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아기의 시선을 사로잡아요. 아기는 부모가 읽어주는 이름들을 귀담아듣다가 나중에는 "우유 어딨어? 딸기 어딨어?" 하는 부모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콕콕 짚어내게 될 거랍니다. 말귀에서 말문으로 개인차가 아주 크지만 대체로 9~18개월 사이에 처음 말문이 트이는데, "엄마" "맘마" 같이 평소에 많이 들은귀에 익은 말을 생애 첫 단어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식탐이 유난했던 제 둘째 조카의 첫 단어는 "암자 감자!"였지요. 이 시기에 아기가 말할 수 있는 표현 언어의 개수는 아직 적지만 그보다 대략 3~6배 이상의 단어를 이해수용 언어학일 수 있습니다. 영유아기의 신체나 인지 발달이 비교적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진행되는 데 비해서 언어는 일단 말문이 트이면 그 뒤로는 비약적인 발달이 일어납니다. 언어학자들은 18~24개월 전후를 언어의 폭발적 팽창기'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마치 굶주린 진공청소기처럼 어휘를 빨아들이는데, 이때 습득하는 새로운 단어의 상당수가 사물의 '이름'입니다. 정말 끝없이 이름을 알고 싶어 하고 말하고 싶어 하지요. 이런 민감이기에 여러 사물이 맥락이 되는 배경과 함께 그려진 그림책은 이름을 배우고 말하는 '명명'에 빠진 아이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잘잘 1,2,3'은 재미있는 전래동요와 이억배 선생님의 전통적인 그림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 장면마다 꼬부랑 할머니, 두더지, 다람쥐 등의 등장인물이 나타나 저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마지막에는 다 함께 시끌벅적 신나는 기차 여행을 떠나지요. 사실 이 그림책은 "하나 하면 할머니가 호박을 이고서 잘잘잘, 둘 하면 두더지가 땅굴을 판다고 잘잘잘" 하는 식으로 1~10까지 수 세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수 개념이 없어도 부모가 읽어주는 동안 귀로 들은 할머니, 호박, 두더지 같은 단어들을 그림 속에서 찾으며 사물 인지와 명명만으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어요. 한글, 알파벳, 색, 모양 등 개념을 담은 그림책들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친숙한 사물을 또렷한 그림으로 보여주므로 같은 쓰임으로 적합합니다. 이렇게 새로이 사물의 이름을 익히면 아이는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 언어의 규칙을 찾아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때 흔히 나타나는 오류가 '과잉 확장'입니다. 이를테면, 엄마가 『잘잘잘 1』을 읽어주며 여우를 가르쳐주자, 아이가 옆집 개를 보고도 "여우"라 고 말하는 겁니다. 아이는 '털이 있고 네 발 달린 건 다 여우'라고 과잉 확장을 한 거예요. 어느 날 아이가 모든 남자를 가리키며 "아빠”라고 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열정적인 단어 수집가가 된 아이는 점차 단어들을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처음 만들어내는 문장은 "까까, 또! 과자 또 주세요" "빠방, 어야! 자동차 타고 밖에 나가요"처럼 대개 두 단어의 단순 결합입니다. 조사, 접속사처럼 문법적인 기능을 가지는 '기능어'는 뺀 채, 명사, 동사와 같은 내용을 전하는 '내용어'만을 사용하기에 눈치 빠른 '부모 번역기'가 필요하지요. 아이의 말에 부모가 곧장 주의를 기울이고 정확히 반응해 주는 게 표현 언어의 발달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됩니다. 이 단계를 지나면 아이들은 부모가 말한 문장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세 단어 이상의 문장을 완성하기도 하면서 모국어의 문법 체계를 습득해 나갑니다. 이제 아이들은 더 많은 '문장 샘플'을 필요로 합니다.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다양한 단어들이 적확하게 쓰일수록 좋으며 의사소통의 맥락 안에서 제공되면 더 좋습니다. 자, 답은 또다시 그림책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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