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담긴 세 가지 언어 2

2025. 3. 3. 18:19심리학

작가들은 글과 그림 텍스트뿐만 아니라 파라 텍스트를 통해서도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파라'는 '주변' '결'이라는 뜻입니다. 엄밀하게 구분하면, 그림책의 직접적인 구성 요소이자 종이책으로서의 물성인 판형, 표지, 면지, 타이포그래피 등의 '페리 텍스트'와 그림책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소인 작가의 인터뷰 저서 독자 서평 광고 등의 '에피 텍스트'로 나뉘는 데, 파라 텍스트라고 하면 대부분 페리 텍스트를 가리킵니다. '이수지' 작가는 전 세계에 팬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대표 그림책 작가입니다. 「파도야 놀자」는 바닷가에 놀러 간 아이와 파도의 이야기로 '글 없는 그림책'이에요. 가로가 긴 판형인데, 책장을 펼치면 두 배로 길어져서 바다의 공간감이 시원스럽게 드러납니다. 표지에는 너른 수평선과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는 주인공 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의 포즈는 파도를 향해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하고, 파도를 피해 물러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모습은 이 그림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작가가 직접 쓴 제목의 타이포그래피에는 파도처럼 너울이 일고, 아이의 치맛자락과 머리카락도 역동적으로 나부낍니다. 표지와 본문을 맞붙인 자리인 앞 면지에는 텅 빈 모래사장이, 뒤 면지에는 모래사장 위에 파도가 남기고 간 바다의 선물들이 그려져 있어요. 그사이에 무슨 일 이 일어난 것일까요? 본문을 펼치면 책 가운데 제본선을 마치 경계처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목탄으로 그린 주인공 아이가, 오른쪽에는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푸른 파도가 있습니다. 아이는 파도에 발을 담글까 말까 망설이며 '밀당'을 하다가 끝내 경계를 넘고 파도와 하나가 되어 파랗게 물들지요. 그런데 '이수지' 작가가 아이를 그린 왼쪽 종이는 목탄의 질감이 잘 표현되는 종이고, 파도를 그린 오른쪽 종이는 물감의 색이 잘 표현되는 종이로 서로 종류가 달랐다고 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는 에피 텍스트를 참고하지 않는 한 독자는 끝내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작가는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이렇게 표지, 타이포그래피, 종이가 독자에게 어서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하며 손짓합니다. 파라 텍스트는 독자가 현실 세계에서 그림책 속 이야기 세계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그림책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게 유도함으로써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며 그림책 읽기 경험을 더욱 다층적으로 이끌어줍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그림책의 세 언어인 글 텍스트, 그림 텍스트, 파라 텍스트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셋은 서로를 보조하는 것을 넘어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하여 있기에 크게 한 덩어리로 "아이코 테스트"라고도 부릅니다. 그럼 한데 뭉쳐진 세 언어를 어떻게 해야 잘 읽어낼 수 있을까요? 바로 앞과 뒤를 오가면서 읽는 '순환 읽기'와 되풀이해서 읽는 '반복 읽기'를 통해서입니다. 그림책의 세 언어는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기에 여러 번 볼 때마다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같은 그림책을 읽고 또 읽어 달라고 하면서도 매번 재미있어하지요. 같은 그림책이지만 볼 때마다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림책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림책은 두고두고 오래오래 보아야 하며, 그럴수록 그림책의 독서 경험은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언어 발달을 위한 읽어주기의 기술" 그림책은 부모가 아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는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읽어주는 동안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선, 부모와 아이는 함께 주의를 기울이며 그림책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공유'합니다. 부모의 몸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이의 몸통을 통해서 마음을 울리고, 그 울림이 다시 부모에게 전해져서 부모의 몸 목소리에 반영되는 '상호 울림'이 발생하지요. 상호 울림의 순환이 잘 일어날 때 부모와 아이는 일체감을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언어 발달이 일어납니다. 물론 다른 영역들의 발달도 함께요. 더불어 그림책의 재미와 효용을 알게 되면서 '읽기 동기'가 자라나는데, 칭찬이나 상 같은 외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보상되는 겁니다. 내적 읽기 동기는 꾸준한 독서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인입니다. 그러니 그림책의 가치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어떻게 읽어주는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기 위해서 그림책을 읽어 줄 때는 어떻게 읽어주면 좋을까요? 첫째, 그림책 속 어휘들의 의미와 이야기의 분위기를 부모의 목소리, 표정, 몸짓에 한껏 담아 읽어줌으로써 전달력을 높입니다. 아이가 글 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도와줘, 늑대가 나타났어."는 부모와 아이, 아이와 그림책의 상호작용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한 그림책입니다. 늑대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그대로 툭 튀어나와서 "책장을 넘겨" 책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뒤집어" 하며 지시해요. 부모가 그 긴박한 상황을 목소리와 표정으로 연출하고 오른쪽이 어디인지, 뒤집는 게 무슨 뜻인지 몸짓으로 보여주며 읽을 때, 아이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그림책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랍니다. 둘째, 그림책을 읽어주는 중간중간에 대화를 나누면서 더 많은 상호작용을 시도합니다. 이때 다양한 '질문'으로 아이의 언어 반응을 먼저 끌어낼 수 있는데, 『괜찮아 아저씨』라는 그림책을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귀여운 아저씨에게는 딱 열 가닥의 머리카락이 있고, 그 소중한 머리카락이 이런저런 이유로 한 가닥씩 빠집니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새로운 헤어 스타일을 시도하며 "오, 괜찮은데?" 하고 외치는 초 긍정성을 보여주지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은 그림책 속 이야기나 그림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저씨 머리카락이 왜 빠진 거야?" 아저씨 기분이 어때 보여?" 아저씨의 새로운 머리 모양 어때?') 또, 아이가 이미 읽은 다른 그림책과 연결 지어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 『미용실에 간 사자』 읽었잖아. 그 책에는 어떤 머리 모양들이 나왔는지 생각나?" "괜찮아 아저씨가 동물 친구들과 노는 걸 보니까 엄마는 검피 아저씨가 생각나. 검피 아저씨는 동물 친구들과 무엇을 했지?") 무엇보다, 아이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볼 수 있게끔 이끄는 질문이 좋습니다. ("이 중에서 엄마는 어떤 머리 모양을 해줬었지? 너는 뭐가 가장 좋았니?" "아저씨는 '오, 괜찮은데?'라는 말을 늘 하잖아. 네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뭘까?" "너는 거울에 네 모습을 비춰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은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문학은 본질적으로 '나'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한 대화는 아이에게 문해력의 토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문어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통해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을 충분히 해야 스스로 문자를 읽는 '읽기 독립'을 한 뒤에도 단지 독해에만 그치지 않고 의미 너머까지 사고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가 각 장면의 그림을 구석구석 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 텍스트를 다 읽어줬더라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고, 앞서 질문하기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물의 표정, 배경, 소품, 색깔 등등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간혹 읽어주는 동안 부모가 손가락으로 글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가리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는 글 텍스트가 말하는 그림을 가리키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특히 『파도야 놀자』 같은 글 없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 그림 읽기가 더욱 중요합니다. 글 텍스트가 무엇을 읽어주어야 하는지 당황할 수 있는데, 그림 속에 이야기가 있으므로 부모의 눈에 보이는 그림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아이에게 질문하고, 대화하면 됩니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재미있게 그림책을 볼 수 있지요.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의 틀을 짜다 3  (0) 2025.03.05
생각의 틀을 짜다 2  (0) 2025.03.04
생각의 틀을 짜다 1  (0) 2025.03.04
그림책에 담긴 세 가지 언어 1  (0) 2025.03.03
그림책으로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하기  (0)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