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발달 1

2025. 3. 30. 05:37심리학

우리 모두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세상에 나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타인과 함께 살 아가는 법을 배우지요. 그러면서 차츰 타인과 다른 나라는 존재에 눈뜨게 되고 서서히 '자기 개념'을 형성해 나갑니다. 이 글에서는 '나'를 뜻하는 '자기'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아'를 적절히 섞어 쓰겠습니다. 자기 개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외모• 성격 • 태도· 능력 등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망라한 총체를 가리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인 것이지요. 동화를 연구한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우리는 스스로를 타인과 다르게 정의할 때 한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형성되는 자기 개념은 행복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라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커져서 더 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삶을 비관하며 소외감을 안고 살아가게 될 거예요.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한 낙관과 신뢰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역경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크고 튼튼한 우산입니다. 자기 개념이 싹트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기보다 외적인 자기를 알아가는 게 더 먼저입니다. 아기들은 언제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볼까요? 6~8개월의 아기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며 웃고, 옹알이하고, 손을 뻗어봅니다. 아기의 호기심은 점점 적극적인 탐구로 변해요. 거울 속의 상을 잡으려고 하거나, 과자를 건네기도 하고, 거울의 뒤쪽을 살펴보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기는 그것이 자기라는 걸 알지 못합니다. 연구자들은 아기들에게 '립스틱 테스트'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엄마가 아기와 놀다가 아기 콧등이나 이마에 슬쩍 립스틱을 묻힌 뒤 거울 앞에 앉히고 아기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돌 이전의 아기들은 대부분 거울에 손을 뻗어 거울 속 아기를 닦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평균 18개월 전후의 아기들은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제 얼굴을 닦으려고 했어요. '거울 속 모습이 나'라는 '자기 인식' 능력이 발달한 것입니다. 물론 거울을 자주 접하고 거울을 보는 놀이를 해본 경험에 따라서 개인차가 크게 나타납니다. 『재미있는 내 얼굴』이라는 그림책의 매 왼쪽 페이지에는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상황에 따른 감정을 표정에 담은 아이 얼굴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거울처럼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알루미늄 은박이 붙어 있고요. 독자 아이가 그림책 속 표정들을 흉내 내면 거울 속 내 표정이 바뀌므로 감정 이해뿐만 아니라 자기 인식에도 도움이 된답니다. 이렇게 외적인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종종 거울 앞에서 혼자 우스운 표정을 짓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치 매료된 것처럼 자기 모습을 살피곤 해요. 부모라면 누구나 본 적 있음 직한 이 행동을 가리켜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거울 단계'라고 명명했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이게 나야. 멋져! 대단해!'라고 외치듯 거울 속의 자기 모습에 '나르시시즘'적인 기쁨을 느껴요. 거울에 비친 모습은 한갓 신체 이미지일 뿐인데 그것을 자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자기 개념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는 난해하고 철학적인 개념이지만 무척 흥미롭기도 합니다. 마침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거울 속으로'가 거울 단계 경험을 거쳐 자기 개념이 자라는 과정에 대한 정확한 예가 될 것 같으니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장면을 펼치면 넓고 하얀 여백을 남겨둔 채 오른쪽 페이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뭉개진 검은 목탄의 선이 왠지 무겁고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왼쪽 페이지에 쌍둥이처럼 똑같은 아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화면 어디에도 거울은 없지만, 이미 제목에서부터 거울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된 독자는 그림책의 가운데 제본 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이미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거울을 떠올리게 됩니다. 처음으로 제 모습을 마주한 아이는 다른 아이의 등장을 보듯이 소스라칩니다. 자기 인식이 생기기 전의 아기가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다른 아이로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아이는 점차 경계심을 풀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다가 마침내 그것이 자신임을 깨달아요. 거울 단계에 이른 아이는 마냥 즐겁습니다. 장난도 치고 춤도 추며 자신을 좋아하고 만족해합니다. 이 그림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에 이르면 아이는 자유롭게 풀쩍 날아오르며 벅찬 카타르시스를 표현하고, 마치 나비처럼 화려한 배경 이미지가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찍어낸 듯이 대칭으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좌우 무늬가 미세하게 다릅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과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반전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로 합쳐졌던 두 아이는 서로 자리를 바꾸며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이상적이고 완벽하다고 여겼던 거울 속 자기가 실제 자기와 다르다는 걸 깨달아요. 결국 거울은 깨져버리고 아이는 맨 처음의 불안 상태로 다시금 돌아갑니다. 그렇게 거울 단계의 나르시시즘은 행복하긴 하지만 우리의 진짜 내면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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