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발달 2

2025. 3. 30. 06:46심리학

나를 향해 오르는 계단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자기가 아닌 내면의 자기는 어떻게 발달하고 성숙할까요?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에릭슨'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정신의 주체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각 발달 단계마다 '위기'를 만나요. 인간은 일생 동안 발달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심리적 '과제'를 성취하거나 또는 실패하는데, 그것이 자기 개념의 일부로 차곡차곡 축적되어 가는 것입니다. 에릭슨은 이 과정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그중 영유아기에 해당하는 세 단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아기(출생~18개월): 신뢰감 vs 불신감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어느 날 느닷없이 자궁이라는 안락한 생물학적 환경에서 낯선 사회적 환경으로 내보내지는 일입니다. 에릭슨은 아기가 맞닥뜨린 생애 최초의 위기 상황에서 엄마(또는 다른 주 양육자)와 친밀하고 일관성 있는 상호작용으로 애착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결과 '신뢰감'이라는 발달 과제를 성취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은 사랑받는 존재이며 엄마가 자신을 돌보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바로 아기가 가지는 최초의 자기 개념입니다. 
초기 유아기(18개월~만 3세): 자율성 vs 수치심과 의심 영아기에 신뢰감 과제를 잘 성취하면 다음 단계 과제로 나아갈 튼튼한 토대가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은 걷고 뛰는 이동 능력과 변을 참거나 배출하는 배변 조절 능력이 생기면서부터 자기 스스로 독립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라납니다. 사랑스럽고 순했던 아기가 어느 순간 우주 최강 고집불통 떼쟁이가 되어서 "내가! 내가 할 거야!"를 외치며 사사건건 부모와 충돌하고 대결하는데, 에릭슨은 이 시기 아이들이 '자율성'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서툴지만 혼자 먹으려고 하고, 혼자 입으려고 하고, 자꾸만 부모가 잡은 손을 뿌리치면서 무엇을 놓고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못 하는지 배우는 것이지요. 『엄마 내가 할래요!』의 주인공 영서도 뭐든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입니다. 신발도 내가 신을래요, 약도 내가 바를래요, 내가 씻을래요. 내가 만들래요. 물론 결과는 엉망진창이에요. 그런데 영서는 왜 가면을 쓰고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달리 영서의 속마음은 실패에 대한 자기 의심과 수치심에 두렵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엄마는 영서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영서가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적인 활동들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영서는 머지않아 성공적으로 자율성을 성취할 것이며, 자신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자기 개념으로 가지게 될 것입니다.
후기 유아기(만 3~7세): 주도성 vs 죄책감 후기 유아기 동안 아이들은 언어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신체 발달, 인지 발달 속도도 놀라울 만큼 빨라집니다. 나이와 성에 대한 인식이 생겨 만나는 사람마다 몇 살인지 궁금해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져요. 또 놀이터와 유치원에서 또래를 만나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소꿉놀이 • 병원놀이 • 시장놀이 같은 사회극 놀이를 하며 내가 어른이 되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상상하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는 거울 단계에서 알게 된 자신의 신체적 특징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징을 통해서도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그림책 '나'에서 일곱 살 아이 유리는 매 장면 화면 왼쪽 페이지에 서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유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른쪽에서 누가 유리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유리를 부르는 말과 역할이 달라져요. 남자아이가 보면 여자아이, 남동생이 보면 누나, 오빠가 보면 동생, 선생님이 보면 학생, 의사가 보면 환자, 장난감 가게에 가면 손님 등으로요. 이렇게 삶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아이는 '나'에 대해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들이 있음을 어렴풋이 인식하며 그것을 토대로 자기 개념을 확장해 나갑니다. 아이가 동성인 부모를 모방하고 동일시하며 성 역할을 배우는 것도 이때입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자아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여자아이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겪게 되지요. 간단히 설명하면, 이 시기에 남자아이는 엄마, 여자아이는 아빠에게 더 큰 애정을 가지는데, 슬프게도 이미 그들에게는 각각 남편과 아내, 즉 아이 입장에서는 동성 부모의 존재가 있습니다. 결국 아이는 그들에 비해 자신이 아직 미숙함을 깨닫고 남자아이는 아빠를 따라 하며 남성성을, 여자아이는 엄마를 따라 하면서 여성성을 습득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생물학적인 성 역할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공고히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단순히 남성성 • 여성성에 대한 학습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성에 대해 건강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에 대한 생각 역시 자기 개념으로 통합되니까요. 최근에는 유아 교육 기관에서도 일상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해 내는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털이 좋아』 표지에서 주인공 아이는 커다란 어른 옷을 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이상한 수염까지 달고 있습니다. 사실 이 아이는 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는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힘이 약해진 것 같다며 의기소침해 있어요. 그런 자기와 달리 엄마 아빠는 힘도 세고 이것저것 척척 잘하지요. 아이는 그게 어른들만 가진 비밀스러운 털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작가는 엄마 아빠의 신체에 난 털을 동물에 빗대어 표현해요. 이를테면, 형광등을 척척 갈아 끼우는 엄마의 겨드랑이털을 오리, 커다란 트럭을 모는 아빠의 겨드랑이털을 고릴라로 그렸습니다. 아이는 자신도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털을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의 털을 통해서 성장의 의미를 생각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아이의 기대와 희망을 특정한 성 역할에 치우침 없이 보여주는 색다르고 유쾌한 그림책입니다. 종합해 보면, 후기 유아기는 한마디로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사회적인 나, 생물학적인 나에 대한 인식을 키우고 무한한 호기심과 가능성에 부풀어 오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스스로 어떤 책임을 맡으려고 하면서 부모를 도와 심부름을 하겠다고 나서고, 동생을 돌보겠다고 하고, 요리를 만들겠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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